 임순례 감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인권영화에 관심을 두진 않아요. 음...한국사회에서 살면서 당연히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웃음) 또 인권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과 제가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비슷해요.”
임 감독은 단편 ‘우중산책’을 시작으로 장편 데뷔작인 ‘세친구’를 통해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밤무대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까지.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모습을 그만의 시선으로 영화 속에 담아냈다.
초겨울 날씨가 시작된 11월 중순, 삼성동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임순례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영화를 통해 현실을 보여줄 뿐, 나머지는 관객의 몫  영화 ‘날아라 펭귄’ 콘티뉴이티북의
일부 내용 지난 18회 부일영화상 ‘유현목 영화예술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겠다"고 수상 소감을 발표하셨고요.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처음 시작도 그랬지만, 저는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어떤 의미를 밝히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실적인 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사실을 비틀어서 허구나 환타지로 제시할 수도 있지만, 제 스타일은 아니고요.
‘날아라 펭귄’을 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현실을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아무래도 관찰을 많이 하죠. 그리고 제가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해서는 취재를 많이 합니다. 핸드볼, 밤무대 가수들에 대해 잘 모르니까 조사를 많이 하고, 그 분야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부분을 많이 얻으려 합니다. 본질을 확실하게 잡아낼 때까지요.
감독님 영화에는 해피엔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둡게 끝나는 경우도 있는데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해서 현실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똑같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현실에 대해 고민해보는 사람, 더 나은 생각을 하는 사람, 물론 체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다만 저는 ‘관객들 각자가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올바른 현실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이에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영화마다 조금씩 달라요. ‘날아라 펭귄’은 관객들이 인권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했고요. ‘우생순’은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한 영화에요. 관객들이 즐거웠으면 좋겠고 그만큼 흥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친구’ 같은 경우는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영화잖아요. 자기와 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면 좋겠어요.
예술영화 보면서 영화제작을 꿈꾸다  임감독은 파리 유학 시절 일본, 중국,
아프리카, 동구권 영화 등 1000편이상의
영화를 봤다. 원래 리더쉽이 강한 편이신가요.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때는 심하게 내성적이었어요. 반면 중학교 때는 오락부장도 하면서 활발하게 지냈고, 고등학교 때는 다시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이었죠. 동창들은 제가 영화감독이 된 것에 대해 ‘의외다’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어두운 청년기를 보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학교를 그만뒀고요,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셨고 가정폭력을 경험했죠. 경제적으로나 주변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었어요.
여러 가지 환경적 이유 때문에 자퇴를 결심하신건가요. 아니요. 그 결정은 제 기질 때문이에요. 제 판단이었고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지만 강요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었어요. 학교의 획일적인 입시위주 교육을 견디지 못했어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어요. 원래는 79학번이어야 하는데 2년 놀다 들어가서 81학번이에요. 데모세대거든요. 근데 저 는 주로 불란서 문화원에 영화를 보러 다녔어요. 지금 말로 하면 프랑스 영화에 꽂힌 거죠. 이전에 봤던 대중적인 영화와 다른 작가주의, 예술주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새로운 기능에 눈을 떴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생각하게 됐고요. 그때가 대학교 3학년이에요.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대부분 이론위주의 강의였고 장비가 부족했죠. 좋은 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1988년에 영화를 보기위해 파리로 유학을 갔죠. 간 김에 영화공부를 했고요. 파리에서 3년 반 체류하면서 1000편 이상의 영화를 봤어요. 파리라는 곳이 다양한 문화가 있는 곳이잖아요. 영화적인 시야, 열린 사고 등. 그때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까지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오히려 운이 좋았고요. 파리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가 서른 세 살이었고, 여자였고, 경험도 없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인연이 잘 닿아서 ‘세상 밖으로’ 라는 영화 스크립터로 현장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처음 제작한 단편영화가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 덕에 장편영화 ‘세친구’로 데뷔를 할 수 있었죠. 남들에 비해 고생한 편은 아니에요.
개성 있는 영화가 중요한 시대... 대인 기술도 필요  임감독은 차세대 여성감독들에게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기를 주문했다. 여성감독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영화감독으로서 자리 잡기 힘드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감독님의 어떤 재능 때문인가요. 체력?(웃음) 사실 농담이 아니고요,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라는 게 인간관계 없이는 어렵잖아요. 요즘엔 술을 안 마셔서 왕따 당하고 있긴 한데.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해요. 태생적인 성격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좀 도움이 많이 됐겠죠.
감독의 자질로 필요한 것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가장 중요한건 영화적 능력이겠죠.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창의력이나. 뭐랄까, 자기만의 색깔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똑같은 한국사회지만 제가 본 한국사회와 홍상수 감독, 김기덕 감독을 통해 본 한국사회는 다르게 보이잖아요. 두 번째로는 종합적, 객관적인 시각, 판단력, 순발력 등이 필요한 자질 중에 하나고요. 세 번째로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대인 기술도 필요합니다.
여성감독이 적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영화작업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요. 돈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고요. 또 영화판이라는 곳이 배타적이고 남성적 문화에요. ‘자본을 쥐고 있는 네트워킹의 주류가 남성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정보가 아무래도 여자들에게 배제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에요.
여성으로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예전에는 영화감독 자체가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여자의 경우는 더 했고요. 지금은 디지털화되면서 제작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또 세대가 젊어지면서 여성에 대한 편견도 많이 개선됐어요. 어쨌든 제일 중요한 건 자기만의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도전하는데 있어서 여자라고 주저하거나 포기하진 않았으면 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1955년부터 2000년 까지 데뷔한 여성감독이 10명이 채 되지 않다가 2000년부터 현재까지 40여명이 데뷔했어요. 양적으로는 팽창했죠. 그러나 400만 넘은 흥행영화는 ‘집으로’와 ‘우생순’ 정도고 장르도 대부분 드라마에다 저예산 영화란 거예요. 차세대 영화감독들은 좀 더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고 고예산 영화에 도전했으면 합니다. 흥행 부분에 있어서도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요.
한국 사람들을 사랑한 감독으로 남고 싶어 앞으로 찍고 싶은 영화가 있으세요. 영화작업은 그림, 음악 같은 개인예술과 달라서 정확하게 "이러이러한 영화를 찍을 예정"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기본적으로는 재미, 감동, 주제가 전달되는 영화를 찍고 싶고요. 저의 재능이 많다면 한 영화 안에서 다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따로 따로 표현할 수도 있을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영화감독으로 남고 싶으세요. 민족주의자나 애국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와 동시대를 함께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를 표현하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을 많이 사랑한 감독’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라는 범위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보편성을 얘기하고 싶어요. 글 & 사진 위민기자 송미연 |